지수와 시장이 따로 놀았다
코스피 -2.70%, 코스닥 +0.25%. 코스피 낙폭만 보면 급락장입니다. 그런데 코스피 상승 종목이 611개였습니다. 지수가 2.7% 빠지는 동안 오른 종목이 그만큼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괴리의 원인은 단순합니다. 삼성전자가 -5%, SK하이닉스가 -4.5% 수준까지 하락했습니다. 시가총액 1, 2위 두 종목의 낙폭이 코스피 하락의 대부분을 설명합니다. 시장 전체가 무너진 게 아니라 대형 반도체와 지수만 크게 눌린 장이었습니다.
지수만 보고 하루를 판단하면 오늘 같은 날을 완전히 잘못 읽게 됩니다. 저는 지수 낙폭이 클 때 항상 상승 종목 수를 먼저 확인하는데, 오늘은 그 숫자가 지수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코스닥이 플러스로 마감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코스피가 -2.70%인 날 코스닥이 오르는 건 흔한 조합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갈려 있었다
NXT에서 이미 오늘의 구도가 보였습니다. HLB 그룹주가 개별 이슈로 강하게 출발했고 AI 의료 관련주도 일부 상승했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1.6% 수준으로 약했습니다. 대형 반도체 약세와 바이오 상대강도가 장전부터 대비되는 그림이었고, 시간외 전체는 큰 특징 없이 조용했습니다.
본장은 양 지수 보합 수준에서 출발했습니다. HLB 급등으로 바이오가 강해지면서 코스닥이 상대적으로 올랐고, 이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한중엔시에스·삼성SDI 등 2차전지도 움직였습니다. 반도체에서는 대덕전자·코리아써키트·인터플렉스 등 기판주가 상대적으로 강했습니다. 대형 반도체가 급락하는데 같은 섹터 안의 기판주가 상대강도를 보였다는 점은 오늘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섹터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주 특유의 문제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양자·광통신·우주도 일부 반응했지만 시장 전체를 끌고 갈 폭발적인 테마는 없었습니다.
10시 이후 성격이 명확해졌습니다. SK하이닉스 -3.8%, 삼성전자 -3.5%까지 밀리면서 코스피가 약해졌고 이후 각각 -4.5%, -4% 수준까지 낙폭이 확대됐습니다. 반면 바이오·2차전지가 버티면서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강했습니다. 11시대에는 미국 국채금리가 5.2% 부근에서 움직이는 것이 증시 약세 원인 중 하나로 언급됐고, 두 대형주 하락이 계속되면서 코스피는 당일 저점을 갱신했습니다.
5.2%가 겨눈 자리
금리 얘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9월 15일에 미국 10년물이 5.0%를 돌파했을 때, 저는 돌파 당일보다 그 위에서 며칠 더 머무를 때가 진짜 부담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9월 16일 밤 FOMC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국면이 바뀌었다고 정리했습니다. 오늘 5.2% 부근이라는 숫자는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주목할 건 금리 부담이 시장 전체가 아니라 특정 자리를 겨눴다는 점입니다. 금리가 오르면 먼 미래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할인 폭이 커지기 때문에 성장주, 특히 대형 성장주가 먼저 눌립니다. 오늘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집중적으로 밀리는 동안 코스닥 개별 성장주들이 오히려 버틴 건 이 논리와 맞아떨어집니다. 지수 영향력이 큰 대형주일수록 외국인·기관 비중이 높아서 금리 변화에 먼저 반응하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오늘 하루 움직임만으로 금리가 코스피 대형주의 추세를 꺾었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습니다. 대형 반도체가 하루에 4~5% 빠지는 건 금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과한 낙폭이고, 뒤에서 볼 수급 요인이 같이 작용했습니다. 이 판단의 전제는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가 같은 강도로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늘 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크게 빠진다면 금리 요인의 비중을 더 높게 봐야 합니다.
점심 이후에는 추가 급락보다 횡보가 이어졌습니다. 특별한 신규 테마가 강하게 등장하지 않은 가운데 2차전지가 시장 대비 잘 버티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오전 VI에 진입한 뒤 오후까지 코스피 대비 상대적으로 잘 버텼습니다. 오후 후반까지 시장은 조용했고 미국 선물도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14시 44분 이후 장 막판 추가 조정이 나타났고, 국채금리 불확실성과 외국인·기관의 대규모 매도가 부담으로 지목됐습니다. 15시대에는 삼성전자가 -5%, SK하이닉스가 -4.5% 수준까지 하락했습니다.
5조원이 한쪽으로 쏠린 날
수급이 오늘 낙폭의 나머지 절반을 설명합니다.
코스피는 외국인이 -3조 6,108억, 기관이 -1조 4,336억을 순매도해 두 주체 합산 매도 규모가 약 5조 444억원에 달했습니다(한국거래소 투자자별 매매동향). 반대로 개인이 +3조 3,935억을 받아냈습니다. 외국인은 선물에서도 -5,962억을 순매도했습니다. 외국인 현물 대규모 매도, 외국인 선물 매도, 기관 현물 매도가 동시에 나타난 구조입니다.
선물 전체를 보면 개인 -842억, 외국인 -5,962억, 기관 +7,523억입니다. 기관이 선물을 사면서 현물을 팔았다는 건 방향성 베팅보다 포지션 조정 성격이 섞여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 해도 현물 1조 4,336억 순매도가 지수에 준 부담은 그대로 남습니다.
코스닥은 외국인 +338억, 개인 +239억, 기관 -693억으로 규모 자체가 작았습니다. 큰 수급 이탈 없이 버텼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9월 15일에 코스닥 외국인 순매수가 처음 방향을 바꿨을 때 규모보다 지속 여부가 중요하다고 썼는데, 오늘 코스피에서 외국인이 3조 6천억을 던지는 와중에도 코스닥에서는 순매수를 유지했다는 점은 기록해둘 만합니다. 두 시장을 보는 시각이 분리돼 있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오늘 코스피 -2.70%는 대형 반도체 급락과 5조원 규모 매도가 겹쳐 만들어진 숫자이고, 그 아래에서 HLB·의료AI·제약바이오가 코스닥 상대강도를 주도했으며 태양광·유리기판·2차전지 같은 개별 성장 섹터도 강세를 보였습니다. 마감 코멘트에서는 이런 애매한 시장에서 새로운 비중을 강하게 넣기보다 관망하는 전략이 강조됐고, 미국 시장을 하루 더 확인한 뒤 추가 조정이 오면 오히려 아래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는 방향으로 정리됐습니다.
제가 다음 거래일에 먼저 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대형 반도체가 오늘 낙폭의 절반이라도 되돌리는지, 그리고 코스피 외국인 매도가 3조원대 규모로 반복되는지입니다. 반도체가 되돌리고 외국인 매도 규모가 줄면 오늘은 금리발 단기 충격으로 끝나지만, 둘 다 이어지면 611개 상승 종목이 만든 오늘의 온기도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 글은 시장 흐름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개인 기록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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