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것과 같은 속도로 되돌아왔다
안녕하세요, 태온파파입니다.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그리고 어제의 실패한 반등. 그 뒤에 온 오늘은 정반대였습니다. 코스피는 18%, 코스닥은 11% 수준의 강한 되돌림으로 마감했습니다.
내려올 때도 기록이었고, 올라갈 때도 기록입니다. 오늘은 그 되돌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전 섹터가 갭상승으로 열었다
NXT 시간대부터 전체적으로 갭상승이 나왔습니다. 로봇과 반도체, 반도체 밸류체인이 모두 상승했고, 장 초반부터 대형 반도체가 버텨주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어제까지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지난 사흘간은 반도체가 흔들리면 지수가 따라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그 반도체가 아래를 받쳐줬습니다.
다만 변수가 하나 예고돼 있었습니다. 장 마감 이후로 예정된 해외 메모리 업체의 실적 발표였습니다.
초반, 이번엔 매수 사이드카였다
본장 초반 코스피는 13%, 코스닥은 5.5% 상승으로 출발했습니다. 두 시장 모두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같은 사이드카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이틀 전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1분 간격으로 걸렸고, 오늘은 매수 쪽으로 제동장치가 걸렸습니다. 시장이 한쪽으로 쏠리는 속도 자체는 그대로인데, 그 방향만 바뀐 셈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이 강세를 주도했고, 로봇과 전기전력, 데이터센터 관련주도 함께 올랐습니다. 급락 구간에서 살아남았던 테마들이 반등 구간에서 그대로 앞장섰습니다.
오전, 수급이 완전히 뒤집혔다
오전에도 양 지수는 상승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중간중간 살짝 꺾이는 모습은 있었지만 급락 조정 없이 무난한 흐름을 유지했습니다.
수급이 오늘의 전부입니다. 코스피에서 개인이 7조 6천억을 순매도했고, 외국인이 7조를 순매수했습니다. 코스닥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함께 매수에 나섰습니다.
지난 사흘간 반복된 구조가 극단적인 형태로 다시 나왔습니다. 개인이 던지고 외국인이 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규모가 달라졌습니다. 7조 규모의 외국인 매수는 개인의 반대매매 물량을 받아내고도 지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크기입니다. 물량이 나오지 않아서 오른 게 아니라, 받아주는 쪽이 압도적으로 커져서 오른 겁니다.
오후, 금리 동결이 재료로 붙었다
오후에는 금리 동결이 시장에 우호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제까지 시장을 짓눌렀던 조달 비용 우려가 일단 한 박자 늦춰진 셈입니다.
로봇 테마가 다시 순환했고, 중소형 종목들이 횡보 구간에서 움직였습니다. 13시 26분 코스닥이 당일 고점을 갱신했고, 시장은 급락 없이 강한 반등세를 유지했습니다.
오전 고점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졌던 어제와 가장 크게 갈린 지점이 여기입니다. 오늘은 오후에도 힘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마감, 되돌림은 장 끝까지 이어졌다
장 후반에도 상승은 계속됐습니다. 전기전력과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상한가가 나왔고, 로봇 순환도 이어졌습니다.
14시 51분에는 눈여겨볼 신호가 하나 나왔습니다. 단일레버리지 상품의 거래량이 평소보다 줄었다는 점입니다. 어제부터 시행된 보완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지난 사흘간 시장을 지배했던 반대매매와 강제 청산의 압력이 구조적으로 완화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마감은 코스피 18%, 코스닥 11% 수준의 강한 되돌림이었습니다.
다만 장 마감 이후 해외 메모리 업체의 실적이 예상치를 하회하며 반도체 쪽에 영향을 주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상승이 내일 그대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이 남긴 세 가지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상승의 실체도 수급입니다. 외국인 7조 순매수가 개인 7조 6천억 순매도를 받아냈습니다. 지난 사흘간의 하락이 반대매매라는 기계적 물량 때문이었다면, 오늘의 상승은 그 물량을 받아줄 주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펀더멘털이 바뀐 게 아니라 수급의 균형이 바뀌었습니다.
둘째, 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일레버리지 거래량 감소는 숫자 하나지만 의미가 큽니다. 지난 사흘간 차트와 무관하게 쏟아지던 청산 물량의 원천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이 유지되는지가 다음 주 시장의 안정성을 결정합니다.
셋째, 방향은 바뀌었지만 진폭은 그대로입니다. 매도 사이드카에서 매수 사이드카로 바뀌었을 뿐, 하루에 두 자릿수가 움직이는 시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는 국면에서도 변동성 관리는 필요합니다.
총평 — 바닥은 뉴스가 아니라 수급이 만들었다
오늘의 반등을 금리 동결이나 실적으로 설명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벌어진 일을 봐야 합니다.
지난 며칠 글로벌 시장을 짓눌렀던 건 특정 헤지펀드의 포지션이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펀드의 포지션이 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대형 기관 쪽으로 통매각되는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이 소식이 나오면서 숏 포지션이 걷히기 시작했고, 나스닥 선물이 강하게 튀어 올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개별 펀드의 흥망이 아닙니다. 그 펀드가 들고 있던 페어 트레이딩 포지션, 즉 한쪽 그룹을 사고 다른 쪽을 파는 뒤엉킨 구조가 리셋됐다는 점입니다. 시장을 짓누르던 잠재적 매도 물량이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손으로 넘어간 겁니다. 수급상의 불확실성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옵션 시장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하락장에서는 풋 옵션 거래가 활발해집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풋 미결제약정이 늘기는커녕 거래 자체가 실종됐습니다. 이건 시장이 안심했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신규 포지션을 잡을 여력조차 남지 않을 만큼 탈진했다는 뜻입니다. 공포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국면이 바닥 근처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통화 쪽에서도 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일본 당국이 월말을 앞두고 강한 엔화 매수 개입에 나섰고, 162엔대에서 버티던 환율이 단숨에 158엔까지 내려왔습니다. 한 달 동안 쌓인 흐름을 하루 만에 되돌린 셈입니다. 이 정도 속도의 개입은 엔화를 팔아둔 투기 포지션에 강제 청산을 유도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충격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캐리 트레이드에 얽혀 있던 불확실성을 빠르게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이 세 가지를 겹쳐 보면 그림이 나옵니다. 헤지펀드 포지션 정리, 옵션 시장의 공포 소진, 엔화 포지션 언와인딩. 전부 수급의 매듭이 풀리는 사건입니다. 어제까지의 하락이 펀더멘털 때문이 아니라 꼬인 포지션 때문이었다면, 그 매듭이 풀리는 순간 되돌림도 그만큼 빠르게 나옵니다. 오늘 우리 시장이 하루에 18% 회복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상적인 상승이라기보다, 비정상적으로 눌려 있던 구간을 되감은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금 구간을 볼 때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이런 되돌림은 빠르지만, 원래 물려 있던 매물 구간에 도달하면 속도가 꺾입니다. 강제로 내려왔던 구간을 지나 실제 매물대에 닿는 순간부터는 성격이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지난 며칠 무너진 건 지수만이 아닙니다. 레버리지를 감당하지 못한 펀드들이 실제로 청산됐습니다. 시장은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상품은 방향이 맞아도 진폭을 견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번 주가 증명한 건 기술이 아니라 생존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사흘간 견뎌내신 것만으로 이미 잘하신 겁니다. 다음 주는 오늘의 되돌림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그리고 반대매매 물량이 실제로 줄어드는지를 확인하는 구간이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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